파리채 때문에 전쟁이
link  책벌레   2025-12-21

파리채 때문에 전쟁이..

분명 최초의 파리채는 사람의 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파리를 눌러 죽이는 도구들이 뒤따라 나왔을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자루가 달린 파리채를 선호했다. 보통 긴 말꼬리 털을 나무나 금속 또는 상아로 장식한 손잡이에 붙여 만든 파리채를 머리와 얼굴 주위에 계속 휘둘러 파리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인도네시아와 폴리네시아의 다양한 부족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마사이족도 파리채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타이에서는 왕의 유일무이한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희귀한 흰 코끼리의 꼬리털로 파리채를 만들어 썼다.

심지어 파리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827년 알제리 주재 프랑스 영사와 오스만투르크의 황제가 임명한 후세인 총독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프랑스가 알제리 정부에 주기로 약속했으나 보내지 않은 돈 때문이었다.

모욕감에 화가 치밀어 오른 후세인 총독이 파리채로 영사의 얼굴을 때렸다. 프랑스는 자국 영사가 당한 일을 용서할 수 없는 치욕으로 받아들이고 군대를 보내 복수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파리채가 나온 것은 캔자스 주에 살던 두 사람 덕분이다. 1905년 여름 캔자스 주에 파리가 들끓자 주 의료위원회의 새뮤얼 크럼바인 위원은 파리가 전염병을 퍼뜨릴 것을 걱정했다. 어느 날 토피카의 야구경기장에서 관중이 “공을 때려 공을 때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크럼바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크럼바인은 캔자스 주민들에게 “파리를 때려서 ” 잡으라고 권하는 의료위원회 고시를 배포했다.

교사 프랭크 로즈는 크럼바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파리와의 전쟁을 돕는 도구를 개발했다. 막대에 체를 매달아 최초의 현대식 파리채를 만든 것이다. 이 파리채의 핵심은 체였다. 돌돌 만 신문지 같은 단단한 물체를 파리에게 휘두드면 파리는 공기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달아난 버린다. 하지만 구멍이 많은 채를 사용하면 파리는 파리채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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